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페로 제도 (문단 편집) == 역사 == [[영국]] [[스코틀랜드]]에 더 가깝지만, [[바이킹]] 시대[* 사실 그 시절에는 현 영국도 상당 지역이 바이킹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에 [[노르웨이]]의 영토가 되었다. 하지만 [[칼마르 동맹]] 시기와 [[덴마크-노르웨이 왕국]] 시기를 거치면서 사실상 덴마크의 지배를 받는 땅이 되었다.[* 스코틀랜드 최북단 섬들인 [[셰틀랜드 제도]]와 [[오크니 제도]]도 1468년까지는 페로 제도와 상황이 비슷했다. 하지만 이때 덴마크-노르웨이의 마르가레테(마거릿) 공주가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3세에게 시집 가면서 [[지참금]]을 안 보내는 대신 그 일대의 섬을 스코틀랜드에 담보(...)로 맡겼다. 그 후로 덴마크-노르웨이가 따로 지참금을 스코틀랜드에 안 보냈기 때문에 자동으로 스코틀랜드 땅으로 흡수되어 현재까지 이어진다. --이 덕분에 스코틀랜드의 북해 유전이 넓어졌다-- 심지어 셰틀랜드와 오크니 제도에는 [[페로어]]와 비슷한 바이킹 언어인 [[노른어]]가 19세기 중반까지 존재했을 정도다.] 그러다가 [[나폴레옹 전쟁]] 이후인 1814년 킬 조약에 따라 --덴마크가 줄을 잘못 서는 바람에-- 노르웨이가 지배권을 상실했다.[* 이때부터 스웨덴-노르웨이 [[동군연합]](同君聯合)이 성립되었다.] 하지만 킬 조약에서 그 동안 노르웨이의 일부였던 페로 제도를 따로 떼어내 덴마크의 영토로 넘긴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이에 따라 페로 제도는 이때부터 정식으로 덴마크 소속이 되었다.[* 비슷하게 [[동군연합]]이 끝나면서 일부 지역의 소속국이 바뀐 경우로 [[세우타]]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를 참고할 것.]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 [[4월 9일]] [[나치 독일]]군이 덴마크 본토를 점령하자 [[영국군]]은 여기에 맞서 [[4월 12일]]에 페로 제도를 점령했다. [[보가르 공항|페로 제도의 유일한 공항]]도 이 시기 영국군이 지은 것이다. 2차 대전이 끝나자 영국은 [[1945년]] [[9월]]에 철군하면서 페로 제도를 덴마크에 반환하였다. 그리고 원래는 덴마크의 행정 구역에 불과했지만 [[1946년]] [[9월 14일]]에 독립 여부를 묻는 [[https://en.wikipedia.org/wiki/1946_Faroese_independence_referendum|주민 투표]]를 실시하였는데, 독립 찬성(덴마크와 페로 제도의 분리)이 1.5%p 차이로 1위가 되었다.(투표율 67.5%) 하지만 [[무효표]]가 4.1%를 차지하는 바람에 찬성과 반대 모두 과반을 넘기지 못하자[* 링크된 영어 위키백과의 표에서는 무효표를 제외하고 비율을 계산한 것이다.], 덴마크가 투표 결과를 무효로 선언하고 페로 제도의 자치 의회를 해산해버렸다. 이후 페로 제도의 총선에서도 독립 찬성파 정당이 승리하자 덴마크가 협상에 나섰고 [[1948년]]에 자치령이 되었다. 이때부터 페로 제도의 공용어는 [[페로어]]가 되었고, [[덴마크어]]는 제2언어로 교육된다. 지금도 이 곳에는 [[독립운동]]이 남아 있고 독립을 희망하는 정당들이 자치의회 의석의 절반 정도를 차지했다. 현재 페로 제도의 자치는 덴마크 헌법과 그에 따른 자치법으로 규정되었을 뿐 페로 제도의 독자적 헌법은 없다. 페로 제도의 독립진영은 헌법 제정을 희망하지만, 덴마크는 이를 실질적인 독립운동으로 보아 '헌법을 제정할 거면 차라리 독립을 선포해라.' 하고 경고하여 사실상 헌법 제정에 반대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